아무래도 원장은 뭔가 오해를 하고 있는 것 같구만. 원장은 지금 나한테까지도 겁을 먹고 있는 얼굴이거든. 그게 탈이야. 원장이 그렇게 겁을 먹으면 일은 크게 빗나가지. 아까도 말했지만 문둥이는 누가 겁을 먹은 걸 보면 공연히 심술이 사나워져서 점점 더 추악하고 난폭한 꼴을 보인다지 않았는가 말야. 그 주막집 색시 애긴데, 생각해보면 그 여자도 아마 겁을 먹고 날뛰었기 때문에 엉뚱한 화를 부르게 된 꼴이었지. 겁을 먹은 걸 보니까 난 점점 더 심술기가 동했거든. 문둥이끼리라면 절대로 서로 겁을 먹을 일은 없으니까 말야. 문둥이들은 그걸 알고 있지.
<그녀에게 Talk To Her>

이희경의 작업에서 몸은 시간과 살아가며 일어나는 사건의 기록이자, 육체적 실존과 유한성을 전제로 세계로부터 지각된 고통과 폭력을 담는 매개이다. 수동적이며 불안하고 상처 난 몸은 모호한 세계의 실재와 원초적으로 맞닥뜨리고 관계 맺으며 인간의 불확실성을 드러낸다. 그로테스크한 신체 조각은 우리가 인간이라고 믿고 있는 것이 무엇이며 그 경계와 바깥에 무엇이 있는지 질문한다.
<그녀에게 (Talk To Her)>(2016)는 이 세계의 모순들을 마주한 인간의 심리적 상황을 보여주고 있다. 앞에 놓인 흙과 레진(Resin)으로 만든 인물 조각은 머리가 자전거 안장으로 대체 되고 넘어져 팔을 뻗고 있다. 삶에서 체험하고 기록된 감정을 피부에 상처를 내고 물감을 들여 새기는 문신(Tattoo)에 비유하여 구체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그 뒤에 배치 된 인물은 척추와 손, 발만이 표현 되어 가발과 책, 책상 등의 사물과 마찬가지가 된 인격이 탈색 된 존재를 보여주고 있다. 책상 위에 놓인 이청준의 소설 ‘당신들의 천국’을 앞에 놓인 인물에게 읽어주는 구도를 취함으로써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암시하고 있다.
또한 벽에 걸린 천, 타원으로 제작 된 전시대 위에 놓인 인물조각, 책상 등의 사물로 상황을 연출함으로써 연극의 장면과 같은 극적인 효과를 주고 있다.


<그녀에게 Talk To Her>, 혼합매체, 가변설치, 201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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