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른 몸으로 자기 근거 찾기


이관훈(Project Space 사루비아다방 큐레이터)



이희경의 상상력은 부조리한 상황극에서 출발한다. 개인사로 인해 크나큰 상처를 받고 정신적인 고통의 감정으로 치달으며, 고통이 육화되는 몸 자체로서 많은 의미를 부여한다. 그는 우선 상처를 치유한다는 힐링의 대상으로, 서술 속에서 본능적인 순수한 감정을 발산으로 일어날 수밖에 없는 괴팍한 상상을 연출해 낸다든가, 서술된 원초적인 풍경에 의해 잉태하는 괴기한 생물들에서 찾는다.
세상의 굴곡을 겪은 성인으로서의 감성과 어릴 적 감성의 공유점은 미미하다. 이 관계에서 이희경의 어릴 적 감성은 상대적으로 그 간극의 차이에서 발생하는 충돌로 인해 오히려 기억될만한 정도의 ‘괴상한 질주’의 움직임으로 빠져나온다. 그 원초적인 움직임으로 돌출된 형상들은 그의 기질 안에 은폐된 ‘고독과 나약’이 세상 밖을 향해 외치는 몸짓이다. 이는 고립된 의식에서 비롯된 양상으로 사회적인 것과는 단절된다. 이 의식과 몸짓은 결국 그가 만들어 놓은 환경(영역)에서 이상한 판타지로 전개된다.      
 이희경의 ‘또 다른 몸’을 만드는 지표는 새로운 영역과 정착지로 향하는 지점이다. 여기서 ‘또 다른 몸’이란 물질로서의 육체의 성질이 아닌 정신적인 피사체를 두고 얘기한다. 그 지표로 향하기 위해 이희경은 알 수 없는 근원을 그저 퍼 올리는, 즉 자신의 몸과 정신이 걸쳐있는 이 세상에 ‘자기-제거’를 피력하며 스스로 자기 최면을 통해 유도해내는 방법을 시도한다. 마치 세포의 분열과 접함이 되는 것처럼 사람, 동물, 사물 등으로 합체, 해체, 변형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여기서 모종의 생물체가 탄생한다.
어떤 면에서 그의 ‘또 다른 몸’ 만들기는 외부세계에 의해 이미 형성된 자신의 상을 지우거나 탈각시키기 위한 것으로, 자신의 심연으로 돌아가 원초적인 감각을 하나의 주체로 되돌리고 싶은 충동에서 시작된다. 이 환상의 카테고리 안에서 혼탁한 도시적 삶이나 생존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 인간 자체로서의 ‘고독감’과 ‘연약함’으로 인해 표류할 수밖에 없는, ‘존재’에 대한 심리적 은유에서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자신의 몸은 어쩔 수 없는 사회적 삶을 살고 있더라도 정신적 몸(또 다른 몸)은 사회 속에서 떼어내어 고립된 상황에서 단세포(개체)를 만들어 내며, 여기에 자기만의 생존이나 확장을 위해 개체마다 ‘은유’를 불어넣어 생명체로 살아가게 한다. 세상을, 사회를, 미술을 두고 문제 삼거나 비판하는 태도로서의 은유가 아닌 자신의 무의식에서 솟구치는 ‘무엇’에 대한 은유이다. 그 ‘무엇’은 어떤 표현을 갈구하며 동시에 판타지의 세계에 끊임없이 도전하는 태세를 취한다.   
예컨대, 이희경이 서술한 이 개체들의 표현은 사회기능 속에서 작용하는 언어도 세인들 간의 대화 역할을 맡은 언어도 아니다. 작가만의 이미지로 구성된 조어들이다. 그가 서술한 은유적인 표현만큼 그 표현을 발견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겠지만, 그 은유적 형상들은 우리에게 낯선 것들이다. 이것은 어느 한 곳으로 고립되기를 거부하는 몸짓으로서, 엇갈린 세계에 이방인으로서의 ‘자기 근거’를 마련하기 위한 이희경만의 조어를 형성하려는 데서 비롯된다.
그는 무의식의 세계와 언어의 영역 사이에 부재한 것을 쫓아 ‘무의식’의 가능성을 타진하고 있으며, 이를 공간 영역의 차원에서 가볍게 스쳐 다룬다. 무의식적인 행동으로서 ‘언제, 어디서’든 혼자서, 쉽게, 행할 수 있다는 상상으로서의 연극적인 시나리오를 만들기 위한 접점에 있긴 하지만, 이희경의 행동은 ‘지금, 이곳에서’의 좀 더 구체적이고 의식적인 사고를 지향하는 것으로 그 차이를 드러내야 하지 않을까. 그 지향점은 ‘또 다른 몸’에서 생성되고, 채집되고, 서술되는 과정에서 자연스레 ‘기억의 집단’을 형성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동시에 가시적으로는 이희경의 뇌 속에서 증식된 ‘기형적 생물 도감’이 만들어지지 않을까. 작가에게 이것을 다시 사회적 관점에서, 자연적 관점에서, 공상적 관점에서 돌출되는 현상과 ‘관계 짓기’를 하며 시처럼, 문학처럼, SF소설처럼, 만화처럼 새로운 판타지를 만들어 가야 한다는 메시지를 던져본다.

2017.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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